편안함이 주는 불편한 진실
우리는 편안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편리한 삶의 도구들과 시스템들이 주변에 넘쳐 납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과 편안한 것들이 주위에 너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황들의 풍족함을 금새 잊어 버립니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계속 갈구합니다. 생각해보면 편안함의 유효기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편안함과 편리함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잘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옛날보다는 좋은 시절인 것은 맞는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는 많아지고 막 즐겁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편안함이 우리를 습격한다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이란 책이 요즘 화제입니다.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아주 흥미롭게 쓴 책입니다. 이 책 참 재미있습니다. 저자 마이클 이스터는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입니다. 행동 변화와 현대인의 건강한 삶에 대한 다양한 기사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하죠. 이번 <편안함의 습격>은 자신이 직접 33일간의 알래스카 순록 사냥 원정의 경험을 통해 현대인이 누리는 풍족함과 편안함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오히려 파괴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것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런 오지의 경험은 너무 불편하고 힘든 고난의 여정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거나와 핸드폰은 당연히 터지지 않죠. 불편함의 극치 속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의 부활. <편안함의 습격>이 주는 짜릿한 간접 경험이 흥미롭습니다.
이 험난한 여정을 출발하기 전에 알래스카 순록 사냥의 가이드인 도니는 저자에게 두 가지 문장을 이번 여행을 통해 꼭 기억하라고 얘기합니다.
“이번 여행은 아주 힘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죽어서는 안됩니다.”
살벌하지만 명확하죠. 고생은 아주 심할 것이다. 사회에서 느꼈던 편안한 삶과는 완전히 작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타협하지 말라라는 지침입니다. 최근의 다양한 연구 조사에 의하면 예전의 우리 조상들이 겪었던 숱한 불편함, 또는 힘겨움의 상황을 경험해 보는 것이 현재의 우리 상태를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사실 인간은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진화해 왔죠. 왜냐면 선사시대 인류는 늘상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고 이런 피말리는 긴장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편암함이라는 감정이라고 우리의 DNA 속에 남겨졌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성. 그것이 생존의 긴장감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는 분명히 다른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주 가끔 편안했다고 하면 지금은 지속적인 편안함의 추구가 실제적으로 가능해졌다는 거죠. 적어도 생존의 위협은 현대인의 삶 속에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생존의 투쟁을 해야하는 시대는 적어도 벗어난 게 사실이죠. 나쁜 일이 아닙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묻고 있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측면에서, 지금의 편안함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걸까요?"
인간의 뇌는 상대적인 비교를 하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합니다.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이에 대한 만족감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샀지만 그 기쁨과 만족이 얼마 오래가지 못한 경험, 다들 있지 않나요? 우리 마음이 쉽게 처음의 행복감을 잊어버린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펀안함, 편리함, 행복의 기준을 끊임없이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결코 만족될 수 없는 이런 본성은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많은 편안함과 편리함을 추구하게 만들게 합니다. 사실 현대인의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스트레스가 그 어떤 시대보다 높죠. 이런 데이터는 편리함의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오히려 병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따분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
저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야영생활이 시작되죠. 사방 몇 십 킬로미터 내에는 인간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롯이 대자연 속에 세 명의 남자들만 덩그러니 남겨진 겁니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추위에 대항해서 싸워야 하고, 순록을 찾아 헤매는 체력적인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또 아무것도 없는 환경 속에서 무료함과 지루함을 어떻게든 견뎌야 합니다. 이런 불편함의 극한 속에서 저자는 일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편안함만을 추구했던 생활에 대한 경종이 속에서부터 솟구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스마트폰을 쓰는 자신의 습관이었습니다.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은 당연히 핸드폰이 되지 않죠.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서 만져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했던 중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자는 예전에 알코올 중독에서 겨우 빠져나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중독이라는 생각을 거의 한적이 없었죠. 그런데 이런 오지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이게 바로 중독이었음을 불연듯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스마트폰 터치 횟수가 하루에 2,617번이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하루에 평균 2시간 30분을 스마트폰을 보는데 소비했다고 합니다. 하이테크는 우리의 마음이 방황하거나 조용히 있지 못하게 합니다. 따분함을 견대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게 만드는 그게 바로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힘입니다.
따분함에 대한 가치가 다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두뇌는 크게 두 개의 모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죠. 집중 모드와 비집중 모드 입니다. 집중 모드는 말 그대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어떤 대상과 목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과제를 하거나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도 집중 모드에서 이루어지지만, 강력한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도 집중 모드에서 동작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스마트폰과 TV라는 강력한 외부 자극에 항상 노출되어 집중 모드로 두뇌가 풀가동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반면 비집중 모드는 우리가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외부의 자극이 없을 때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마음의 휴식 상태입니다. 쓸모 없어 보이는 이 비집중모드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건데요. 사실은 일을 더 효과적이고 훌륭하게 하는 데 받드시 필요한 우리 내부의 에너지와 자원을 복원하고 구축하는 필수적인 상태가 바로 비집중 모드 상태라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비집중 모드에서 두뇌는 복잡했던 생각들을 무의식적으로 정리하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줍니다. 그래서 창의력의 발현을 위해서 비집중 모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짜 휴식같은 휴식이 필요한 거죠. 우리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떠나지 않으면서 수많은 콘텐츠들에 전방위로 노출되어 있는 지금이 오히려 사람들의 창의력이 떨어졌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넘쳐나는 정보의 입력 속에서 아웃풋은 병목 현상에 시달리는 작금의 시대. 그래서 우리에겐 비집중 모드의 따분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요한 하리는 우리의 생산성이 어떻게 스마트 기기들에 의해서 오히려 좀먹히고 있는지를 아주 격렬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집중력은 유한한 자원이며, 우리는 매일 그것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지력 부족이 나리라 디지털 플랫폼과 사회 시스템이 사람들의 주의를 끊임없이 분산시키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집중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결심이 아니라, 주의를 보호하는 구조적인 전략입니다.”
스마트폰, 특히 소셜네트워크와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 회사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스크린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할 것인지를 하루 종일 연구하고 있고, 실제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런 테크 천재들이 만든 서비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런 기술들은 인간의 행동보상심리학에 기반합니다. 자극/행동/보상이라는 3가지 단계를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 깊게 빠지게 되는데요. 사실 우리의 DNA 속에 심겨진 이런 자극/행동/보상이라는 매커니즘은 굶주림에 대항하기 위한 프로세스였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배고픔이라는 자극은 먹이를 구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하게 만들고, 음식을 먹고 난 뒤 포만감이라는 도파민이 마음과 정신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생존을 위한 매커니즘이 변형되면서 자극의 요인에 이제는 따분함도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따분함이 우리를 자극하면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의 뉴스피드에 몰입하게 만드는 행동을 유발하게 되고, 그 결과 똑같은 도파민이 작용해서 우리에게 감정의 보상을 선사하는 구조로 대응하게 됩니다. ‘정신을 위한 정크 푸트’는 이렇게 우리를 사로잡아 버리게 되었죠.
우리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비집중 모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이클 이스터처럼 알래스카 오지로 떠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비집중 모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 봐야할 것 같아요. 도심 공원에서 단 20분만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신경 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산책하면서 휴대폰을 사용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요. 하다 못해 사무실이나 집에서 화초를 키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녹색을 많이 보고 느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핀란드에서는 한 달에 5시간 정도는 자연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가장 좋았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배고픔의 미덕
<편암함의 습격>에는 이 밖에도 '배고픔을 이겨라', '매일 죽음을 생각하라', '짐을 날라라' 라는 내용들도 들어 있습니다. 특히 '배고픔을 이겨라'는 챕터는 굉장히 인사이트가 있었습니다.
현대의 풍족함을 이야기할 때,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저희같은 경우는 전화 한통이면 먹고 싶은 것을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배달 서비스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먹을 것은 넘쳐나고 배는 늘 부른데, 그런데도 우리는 뭔가 늘 허기집니다. 충족되지 않는 만족감. 그리고 늘상 배부르다는 감각이 오히려 정신과 신체를 갉아 먹는 독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우리의 선조는 주기적으로 배고픔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배고픔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 몸은 음식이 들어오면 최대한 남는 에너지로 지방을 만들어 축적해 놓습니다. 생존을 위한 매커니즘인 거죠. 그런데 이런 생존의 도구가 지금 같은 풍족의 시대에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요소가 되어버린 건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배부름이란 편안함의 상태를 벗어나 배고픔을 다시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그렇게 사람들이 부르짖는 다이어트에 대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살을 뺀다는 것만이 아니라 배고픔이라는 불편한 느낌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와 현대의 편안함의 공격을 막아내는 도구로서의 다이어트에 더 큰 의미의 방점을 찍어 봅니다. 불편한 느낌을 감수했을 때 돌아오는 긍정적 피드백과 건강함이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아주 설득력 있습니다.
어떠세요? 오늘 하루 스마트폰을 끄고 주변 공원에 10분만이라도 산책을 다녀오는 건.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