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는 왜 유명해 졌을까?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로 유명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입니다. 혹시 아직도 <넛지>를 읽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행동경제학을 이해하는데 이만한 책도 없습니다. 물론 얼마 전에 작고하신 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야말로 행동경제학의 교과서적인 책이긴 하지만요. 두 책 모두 강추 드립니다. <넛지>의 캐스 선스타인의 <페이머스, 왜 그들만 유명할까> 란 책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성공한 이들은 특별하다는 생각 모두들 가지고 계시죠?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도 저들처럼 성공과 인기의 영광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들의 성공 이유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실천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신앙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들이 하라는 대로 나름대로 열심히 실천했는데, 성공의 근처에도 못닿은 것 같은 자괴감이 듭니다.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나? 내가 저들이 하라는 대로 100% 따라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다른 성공의 이야기는 뭐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늘도 성공 스토리에 목매어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려는 한 가지 사실은 유명해지기 위한 비결은 없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성공의 허와 실에 대한 이야기 시작해 볼까요?
비틀스는 왜 성공했을까?
먼저 영화 얘기를 해 보죠. 몇 년 전 개봉했던 <예스터데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잭 말릭은 평범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그러하듯 말릭도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얻지 못했고 음악을 그만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세상에 정전이 일어나고 바로 그 순간 말릭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죠. 퇴원한 말릭에게 친구들은 기타를 선물하는데, 말릭은 보답으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불러주게 됩니다. 그런데 친구들의 표정이 변하는 겁니다. 뭔가 홀렸다는 듯이. 진짜 멋진 노래라며, 처음 듣는 노래라면서 놀라와 하죠.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한 말릭은 집으로 와서 비틀스를 검색해 봅니다. 그런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비틀스라는 밴드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집니다. 믿기 힘든 상황이죠. 비틀스를 알고 그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릭은 이걸 인생의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비틀스의 노래들을 기억해 노래를 연주하고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잭 말릭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하죠. 사람들은 잭 말릭의 <비틀스> 노래에 열광하게 되고, 비틀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가득한 웰메이드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비틀스는 너무나 위대하며 그들의 음악이 언제 어디서 나왔던 간에 그들의 위대함이야말로 엄청난 인기의 근간이다.’
비틀스의 성공과 인기의 힘은 음악 자체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메시지에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들 비틀스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는 세상이 비틀스라는 그룹을 아예 모른다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정작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는 비틀스의 인기와 명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비틀스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들의 음악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영화가 얘기하는 것처럼 ‘비틀스의 성공과 비틀마니아의 등장은 비틀스의 음악이 너무나 훌륭했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사건이었다’는 생각을 100% 동의할 수 있을까요? 사실 비틀스의 음악이 너무도 훌륭하다는 사실을 반박하기 어렵죠. 그렇지만 이런 직관. 즉 훌륭한 음악은 당연히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 음악을 만든 이는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항상 옳은 것일까요? 정말 그런가요?
때로 직관은 틀린다.
‘때로 직관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 성공과 실패의 세상에서 인과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원천을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성공의 담론을 얘기하는 수 많은 자기개발서들은 이미 성공한 이들의 사례들 속에는 필수불가결한 공통점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통점들이 성공의 핵심 원인이고 키워드라고 말하고 있고, 우리는 이런 성공의 노하우에 열광하고는 하죠.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성공적인 기업들의 핵심적인 성공 원인을 설명한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책에서 짐 콜린스는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로 ‘원칙의 문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회사들은 모두 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기업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기업 성공으로 가는 중요한 이유라고 말이죠. 그런데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원칙이 없어도 성공한 회사들도 많지 않을까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많은 이들이 실제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공통점이 성공의 이유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기업도 사람도 똑같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설명하는 용어로 ‘종속 변수상 선택 Selecting on the dependent variable' 이란 말이 있습니다. 결과와 원인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본성이죠. 우리는 정확한 원인을 발견해 내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종속 변수상 선택’의 이슈로 부각됩니다. 짐 콜린스의 말처럼 원칙이 성공의 이유 중 하나로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원칙이라는 요소가 받드시 성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슈가맨은 왜 잊혀졌을까?
비틀스의 얘기로 다시 돌아와 볼까요? 비틀스의 노래는 물론 대단합니다. 위대하죠. 하지만 비틀즈 음악의 위대함이 반드시 비틀스의 성공을 보장하고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영화 <예스터데이> 처럼, 누가 불러도 비틀스의 음악은 인정받을 만큼 위대하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를 비틀스 만큼 인기있고 위대하게 만들어줄까요?
2012년도에 오스카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서칭 포 슈가맨>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디트로이트 출신의 알려지지 않는 싱어송라이터 식스토 로드리게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슈가맨 이라고 알려진 로드리게스는 1970년대 두 장의 앨범을 냈지만, 아무도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결국 가수 활동을 접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노동을 하는 평범한 가장이 된 로드리게스는 하지만 그의 앨범과 노래는 저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비틀스, 밥 딜런, 롤링스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인 가수로 추앙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지역적인 특성도 이런 인기의 유무에 관련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음악 자체의 위대함과 인기는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대단한 기술을 가진 기업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능력을 가진 사람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노력해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
우연은 강하고 깊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우연이 존재하며 성공과 실패는 그런 우연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20년에 ‘취약 가정 챌린지’ 라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수많은 연구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취약 가정과 아동의 행복 연구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출생의 환경, 부모의 성향, 교육 수준, 인구통계적 데이터, 소득 수준, 인간 관계, 신체 상태, 어휘력 등 측정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에 무려 457개의 팀이 참가 했고, 최종 160개의 팀이 선정되었습니다. 어느 팀이 보다 정확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지만, 결론은 처참했습니다. 어느 팀도 유의미한 예측 결과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각 팀들 나름의 예측 알고리즘은 무작위보다는 조금 나은 수준의 예측을 내는데 불과했습니다. 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도 불구하고 삶의 궤적을 예측하는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더 높였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명확히 연결되어 있지도 않죠. 성공과 실패는 어쩌면 작은 우연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무엇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성공을 꿈꾸죠.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누구는 성공하고 또 누구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런 성공과 실패가 오롯이 그 사람만의 책임일까요? 실패의 원인을 주변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 스스로의 못남으로 자학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모두 다 틀린 얘기는 아니죠.
하지만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점은 주변의 성공한 이들을 보면서 이들을 롤모델 삼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공의 만능키는 없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우연이라는 기회가 맞닿아 성공의 맛을 겨우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성공이라는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얻는 것이 잃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결국 세상은 페어하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이 책은 이 밖에도 수 많은 성공의 사례들을 살피면서 성공은 필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책인데, 동어 반복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은 약간의 흠이 되기도 합니다. 사례들은 넘쳐나는데, 사실 하려고 하는 얘기는 단순하거든요. 아무튼 <넛지>의 아성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추천 드리는 책입니다.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