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기원
오늘은 뇌과학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요즘 뇌과학이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기관 중에서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게 뇌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발현되는 시발점이자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뇌이기 때문에 뇌과학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 외에도 뇌과학이 최근에 주목받는 이유는 AI 때문이기도 합니다. Artificial Intelligence, 말 그대로 인간의 지능을 모방한 것이 AI 입니다. 뇌의 동작 원리와 지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AI도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이런 목적에 딱 맞는 책을 발견했고,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지능의 기원 : 우리의 뇌 그리고 AI를 만든 다섯 번의 혁신> 이라는 책인데요. 저자는 맥스 베넷이라는 분인데, 전통적인 뇌과학자는 아닙니다.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AI를 이용한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큰 성공을 거둔 분인데, 현재도 Alby 라고 하는 AI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입니다. 스스로 AI 연구자로 여러 특허도 보유하고 있기도 하구요. AI 라는 분야를 탐구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 지능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발적인 연구의 결과로 500쪽이 넘는 방대한 이번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하네요. 책의 구성과 내용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실제 출간되자마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구요.
<지능의 기원>에서 맥스 베넷은 지능의 발전이 환경에 적응한 생명과 뇌의 진화의 결과라고 설명하면서, 모두 5단계의 혁신을 통해 현재의 인류의 지능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처음 듣는 발상이고, 구체적인 내용도 굉장히 디테일하고 신선합니다. 출판사에서 뇌과학계의 유발 하라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크게 과장된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이번 수요레터를 통해서 지능의 첫 시작 부분은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이지만 사실 뇌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뇌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죠. 인간의 뇌는 860억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뇌의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한다고 해서 뇌를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 보통 이런 걸 역설계 엔지니어링 이라고 하는데 뇌분석에 역설계 엔지니어링 접근은 불가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뇌연구가 AI 연구에 필요한 이유를 저자 맥스 베넷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AI는 체스 게임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나게 잘하는데,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쌓는 일은 여섯 살배기 아이보다도 못할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재창조하려 노력하고 있는 대상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질문은 사실상 AI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인간 지능 그 자체의 본성에 관한 질문이 아닐까?
<지능의 기원> 중에서
뇌의 근본 동작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AI를 완성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입니다. 뇌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AI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단순히 AI 발전 만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AI 설계라는 측면에서도 뇌과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뇌 연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그러면 뇌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저자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서 그 원리를 찾아야하지 않을까 제안합니다. 복잡하기 때문에 가장 핵심적인 근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 거죠. 동물계 전반에 걸쳐 뇌의 구조는 거의 유사하다고 하죠. 이건 동물계 생명체들이 공통의 조상에 그 뿌리가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그래서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신경세포를 가지게 되었고, 이런 신경 세포가 어떻게 뇌로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부터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최초의 단세포 생명체는 점차 다세포 진핵생물로 진화하게 되죠. 8억년 전 출연했던 이런 다세포 생명체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될 수 있었습니다. 식물, 균류, 동물 세포로 말이죠. 여기에 우리가 주목할 분류는 바로 동물 다세포입니다. 왜냐면 신경세포의 발현이 동물로 분류될 수 있는 다세포 생명체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균류와 동물 다세포 모두 산소로 호흡하고 당분을 섭취하는 생명체였고, 광합성을 하는 식물군과 구별되는 생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경세포는 둥물군에서만 발현되었을까 하는 점인데요. 저자의 흥미로운 관점은 이렇습니다.
하나는 다른 생명체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잡아먹는 것이다.
<지능의 기원> 중에서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잡아 먹도록 진화된 동물계 다세포 생명체는 주변 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는 신경세포의 생성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뇌의 구성요소인 신경 세포는 먹이를 적극적으로 취하도록 진화하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혁신의 시작은 조정이다.
지능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학습은 그러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지능의 발현은 조정 즉,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매커니즘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물성 다세포로부터 진화한 산호는 방사대칭동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방사대칭동물이란 어디를 기준으로 하던 다 대칭적으로 동일한 형태로 구조를 가진 동물을 의미합니다. 산호, 해파리 등이죠. 하지만, 이와는 다른 좌우대칭동물들도 분화되어 진화되었습니다. 입, 뇌, 주요 감각기관들이 앞부분에 몰려 있고, 배설물이 나오는 뒷부분이 있으며 좌우로 대칭의 구조를 가진 생명체들을 좌우대칭동물군이라고 부릅니다. 곤충, 양서류, 어류, 포유류 등이 모두 다 좌우대칭동물들입니다. 여기서 우리 논의의 핵심은 좌우대칭동물의 경우만 뇌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좌우대칭동물에서만 뇌가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조정 steering 이라고 저자는 판단합니다. 적극적으로 먹이를 찾아 움직여야 하는 경우, 신경계가 발전할 수 밖에 없고, 이런 신경계의 고도화가 뇌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사례가 나오는데요. 이 동물의 신경세포는 겨우 302개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뇌가 860억개의 뉴런, 뇌세포가 있다는 것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수준이죠. 하지만 선충의 움직임을 잘 관찰하면, 신경 세포 진화의 패턴, 조정의 측면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충은 먹이 냄새의 농도만을 가치고 움직입니다. 농도가 진해지면 그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고, 옅어지면 방향을 바꾸는 단순한 운동 패턴으로 움직입니다. 아주 효과적인 탐색 전략이죠. 단순한 운동 패턴을 가진 조정이라는 기능을 가진 좌우대칭동물은 방상대칭동물에 비해 훨씬 더 능동적으로 먹이를 찾아 획득할 수 있었고 점점 더 이런 조정 능력을 강화하도록 진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조정이라는 무기를 탑재한 좌우대칭형 생명체에겐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는데요. 그 다음 단계는 바로 학습입니다.
학습의 여명
파블로프의 실험은 아주 유명합니다. 개를 이용한 실험으로 조건반사의 원리를 발견해 냈는데요. 개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종을 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종만 치는대도 개의 침이 고이더라는 겁니다. 자극과 반응이라는 체계가 형성되어 개의 머리 속에 각인되는 건데요. 책에서는 이렇게 먹이와 자극이 연결되는 것을 연합 (association)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종소리와 먹이가 연합 되었기 때문에 개에게 이런 조건반사 조건이 형성된 겁니다. 이게 학습의 진화적 기원입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은 하나의 조건반사로 고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명체는 여기에 적응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한번 형성된 연합은 고정되지 않고, 소거, 자발적 회복, 재획득이라는 과정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종소리를 들려주지만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을 계속하게 되면, 형성되었던 조건 반사는 점차 희미해 지고 소거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종소리를 들려주면 예전의 기억이 소환되면서 자발적 회복 상태를 복원하기도 하죠. 그렇게 다시 종소리와 먹이의 패턴을 반복하게 되면, 예전에 최초 연합이 형성되었들 때보다 훨씬 떠 빨리 패턴이 획득되더라는 것이 재획득에 대한 내용입니다.
최초의 좌우대칭동물은 획득, 소거, 자발적 회복, 재획득 이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우발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탐색했다.
<지능의 기원> 중에서
뇌의 동작도 바로 이런 단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냅스의 강도가 연합을 통해 강해지고, 끊어지고, 다시 붙혔다 강화되는 과정이 바로 학습의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의 시작은 이렇듯 과거 5억 5천만 년 전에 살았던 좌우대칭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지능의 다섯 단계
조정이라는 혁신 이후, 뇌는 강화, 시뮬레이션, 정신화, 언어 라는 혁신 단계를 통해 지금 인간의 지능에 다다르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 챕터들도 매우 혁신적이고 흥미롭습니다. 맥스 베넷이 뇌과학자가 아니라 AI 전문가라는 이력 때문에 책은 학술적인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AI의 발전과 이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능이 어떻게 더 발전되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쏟아지고 있는 AI 기술의 발전 가운데, AI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챙겨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책입니다.
AI와 뇌는 서로의 연구에 영향을 준다… 뇌는 AI를 구축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영감의 원천이며, AI는 우리가 뇌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지능의 기원> 중에서
AI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을 더 잘 이해해야 하는 당위성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