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삼체, 그리고 칠면조
불확실성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이다.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중에서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의 저자 팀 파머는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불확실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고, 우리의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팀 파머는 이론물리학자로 앙상블 예측 시스템이라는 것을 개발하여 일기예보의 정확도를 크게 높힌 공로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대된 인물이기도 한데요.

n차 중력 문제
이 책을 읽어가다가 ‘n차 중력 문제’ 라는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n차 중력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뉴턴의 중력 법칙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뉴턴은 세상의 동작 원리를 아주 단순한 수식들로 표현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뉴턴의 방정식에 따르면 초기의 조건을 알고 있고, 작용하는 힘을 파악할 수 있다면, 임의의 어떤 순간의 위치와 속도를 완벽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즉, 사물에 대한 정보만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뉴턴의 확정된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우리에게 충분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자각.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 법입니다. 뉴턴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보다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뉴턴의 원리는 사물을 너무 단순화시켰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됩니다. 중력의 법칙에서 뉴턴은 2개의 사물간의 영향만을 고려했는데. 사실 이 숫자가 하나만 더 늘어나도, 즉 숫자가 3이 되기만 해도 상호 간의 상태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식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죠. 여러 개의 사물 간의 영향력이 너무도 복잡해지고 만다는 것, 이걸 n차 중력 문제 (n Body Grarvitational Problem) 라고 부릅니다.
그림은 4개의 천체의 궤적으로 도식화한 그림입니다. 꽤 오랫동안 타원의 궤적으로 그리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균형을 깨지고 행성은 궤도를 튀어나가 버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사전 징후도 없이 갑작기 궤도는 붕괴됩니다. 이전까지 궤도를 안정적으로 서술했던 방정식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n차 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달려들었지만 한동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9세기 후반 앙리 푸앵카레가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요. 사실 해결했다고 하기보다는 n차 중력 문제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죠. 왜냐면 “n이 3보다 큰 경우에는 물체의 궤적을 서술하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증명해 버렸으니까요. 푸앵카레가 증명한 n차 중력 문제가 바로 삼체 문제 (3 body problem)이고, 몇 년 전 소개되었던 넷플릭스 시리즈이자 류츠신의 SF소설 <삼체>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삼체 문제
넷플릭스 <삼체>를 본 이후에 요즘 소설 <삼체>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와 등장 인물의 캐릭터와 일부 설정 등은 다르지만, 큰 흐름에선 유사합니다. 넷플릭스의 시각적 기억이 있으니, 소설을 훨씬 더 생동감 있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리즈에선 논리적 비약이 있었던 부분들이 촘촘하게 채워지니 사실 소설이 더 흥미롭습니다. 왜 이 SF 소설이 이렇게 유명한지 알겠습니다.

소설에서도 삼체 문제가 가장 핵심으로 이야기 됩니다. 주인공이 삼체 시스템에 접속해서 경험하는 삼체 세계는 열학하기 그지 없습니다. 세 개의 태양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삼체의 세계는 규칙적인 일몰과 일출이 없습니다. 태양이 뜨지 않아 밤만 계속되는 날도 있고, 뜨거운 태양이 몇 주, 몇 달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정상적인 일출과 일몰이 되는 날들도 있는데, 이런 정상적인 기간 동안 문명은 발전합니다. 있습니다. 소설 <삼체>에서는 이런 시기를 항세기라 부릅니다. 항세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난세기라 부르고, 난세기 동안에는 생명체는 오랜 숙면 상태에서 항세기를 기다리거나 또는 멸망하게 됩니다. 항세기 동안 그 다음의 난세기를 예측할 수 있다면 대비할 수 있을 텐데, 삼체 세상에서는 이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라는 겁니다. 만세력이라 불리는 천체의 패턴을 발견하기만 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텐데 번번이 실패하게 되죠. 삼체 세계는 너무도 암울한 세계입니다. 불확실성의 끝이라고나 할까요.

카오스, 나비효과
다시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로 돌아오겠습니다.
푸앵카레가 증명한 N차 중력 문제의 해결 불가함은 이후 로렌즈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로렌즈 모형이 얘기하는 것은 시스템의 상태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주 미세한 초기 조건의 변화에 의해서도 그 결과가 아주 민감하게 달라지는 상태를 우리는 카오스라고 부릅니다. 보통 우리가 ‘나비효과’로 알고 있는 카오스 이론은 불확실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카오스 이론은 날씨 예측, 천문학, 생태학, 화학, 경제 등 수많은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죠.

특히 책의 저자인 팀 파머는 앙상블 모형이라는 것을 개발해서 날씨 예측 시스템에 큰 공헌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사실 날씨 만큼 예측이 어려운 분야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나비효과로 설명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이 날씨입니다. 수많은 요소의 작은 변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유도되는 날씨 시스템이야 말로 카오스 이론이 딱 맞는 분야이죠. 아무리 슈퍼 컴퓨터를 이용해도 정확한 날씨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1987년 영국의 BBC TV 기상 통보관 마이클 피시는 일기예보 정확도가 높기로 많은 신뢰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월15일, 허리케인이 올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무시하고 그동안의 예측 데이터를 통해서 허리케인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10월16은 은 거의 300년 만에 발생한 초대형 허리케인이 잉글랜드를 강타했습니다. 마이클의 일기 예보를 믿은 사람들은 허리케인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3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슈퍼 컴퓨터의 분석은 허리케인은 없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불과 예보 이후 3시간 만에. 이게 바로 나비효과, 카오스 현상이죠.

2008년의 세계 금융 시장의 붕괴도 느닷없었습니다.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파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런 붕괴가 일어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역시 카오스 입니다. 요즘 미국과 한국의 증시는 최고의 전성기로 보입니다. 여러 호재들도 있고, 실제적인 경제 지표들도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불안정한 요소도 전세계에 가득한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의 독단적인 결정들 때문에 기존의 안정적인 경제 시스템에 균열의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틈이 보이는 것은 카오스 이론의 붕괴를 자극하는 요소들입니다. 최근 AI의 발전과 투자 규모는 정말 역대급입니다. 닷컴 부흥을 앞지르는 AI 기술 혁명의 시대는 아무런 저항없이 끊없이 발전하기만 할까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닷컴 몰락과 같은 붕괴가 AI 분야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않겠죠.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어쩌면 발생할 지도 모를 거대한 몰락의 사건이 일어날 때를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복잡하면 복잡할 수록 n차 중력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예측의 확률은 더욱 떨어지기 때문이죠.
블랙스완, 칠면조
하지만 누구도 이런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잘되어 왔으니 앞으로도 잘 될 것이다라고 믿는거죠. 칠면조의 운명에 대한 비유를 아시나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에 나오는 얘기 입니다. 칠면조는 주인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먹이를 주고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1,000일동안 이 경험이 반복되면 칠면조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 집니다. 하지만, 1,001 일째, 주인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칠면조를 잡아 먹습니다. 칠면조는 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니까요. 이런 상황이 바로 <블랙 스완> 입니다. 그동안의 평화가 미래의 평화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제까지 괜찮았으니 오늘도 내일도 문제없을 거야라고 막연히 믿기 보다는, 일말의 가능성들에 대비하는 자세와 태도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사한 오늘 하루가 오히려 놀라운 기적의 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루 이 순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의 저자 팀 파머가 독자들에 하는 마지막 당부는 이렇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인간이 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점은 비합리성이나 실패의 징후가 아니라, 불확실한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고유한 능력이 결점처럼 드나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중에서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