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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리뷰
촌장입니다.
오늘은 넷플릭스 영화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말에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봤습니다. 감독이 누구냐면 <허트 로커>로 2008년에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은 캐스린 비글로 입니다. <허트 로커> 진짜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영화죠. 사실 제가 이 감독을 기억하는 건 <폭풍 속으로>라는 1991년 작품 때문입니다. 서핑을 즐기기 위해 은행을 터는 페트릭 스웨이지와 그 일당들, 그리고 이들을 잡기 위해 서퍼로 위장 잠입한 FBI의 키아누 리브스의 이야기인데요. 정말 젊은 가슴을 뜨겁게하는 영화입니다. 낙하산 없이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장면과 페트릭 스웨이지가 폭풍의 바다로 서핑을 타고 뛰어드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아무튼 캐스린 비글로가 8년만에 낸 신작이 바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입니다.

동해 근방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
평범한 어느 아침, 동해 부근에서 발사된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포착됩니다. 미국 레이더 기지의 담당자들과 이를 모니터링하는 백악관 상황실은 중국이나 러시아, 아니면 북한의 단순한 실험 발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미국 본토를 향한 ICBM, 즉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착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4분. 곧바로 데프콘 3 단계가 발동되고, 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이 긴박하게 진행됩니다. 갑작스러운 핵공격 앞에서 펼쳐지는 담당자들의 숨가뿐 상황들을 펼쳐보이는 작품이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입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핵전력을 서로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핵억지력이 유지되고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영화에서처럼 의도적이든 아니던 간에 핵미사일을 상대방에게 발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상황에 맞춰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자체적인 매뉴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매뉴얼이라고 하는 것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격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와 절차일 뿐입니다. 결국 같이 망하는 겁니다. 영화에서 핵반격을 막으려는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신다면 대통령님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입니다. 항복 아니면 자살이요.
반격을 하지 않으면 항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반격을 한다면 그건 승리가 아니라 서로가 죽는 자살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겪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가? 일반인들이 아니라, 대통령, 국방부장관, 담당 장군들과 군인들, 백악관의 핵심 참모들이란 지도자들도 이런 실제 상황 속에서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도 사람입니다. 긴박감 속에서 허둥대고 나약하며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 지 갈팡질팡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영화가 아니라 진짜로 이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위기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의 <페이크와 팩트>란 책에서 소개하는 일화인데요.
1983년 9월 26일 새벽, 소련 모스크바 외곽 세르푸코프-15 벙커의 책임자였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의 임무는 ‘OKO’라 불리는 미사일 조기경보 시스템을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냉전의 긴장이 극도로 팽배하던 시기였던 당시는 자칫하면 핵전쟁이 실제로 발발해서 제3차 대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죠. 그날 새벽, 갑자기 뱅커의 모니터 시스템에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조기 경보 시스템 OKO의 화면에 미국에서 발사된 미사일 5기가 소련으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가 잡힌 거죠. 매뉴얼대로라면 페트로프 중령은 즉시 상부에 보고해야 했고, 그러면 소련의 지휘부는 미국을 향해 보복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핵전쟁에 돌입하게 되는거죠. 수백 수천 만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할 것이고, 제3차 대전으로 지구는 쑥대밭이 되어 버릴 겁니다.

이 긴박한 순간 그러나 페트로프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판단했습니다. 상부에 연락을 해서 지금 발생한 ‘OKO’는 오동작이라고 설명을 한거죠. 상관의 태도에 벙커 내 부하들을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있는 그대로 보고하지 않는 걸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페트로프 중령은 합리적인 직관을 통한 침착한 대응을 했을 뿐입니다. 페트로프는 그 긴박한 순간에 눈을 감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아무런 사전 예고없이 정말 공격했다면, 단 5발로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즉각 보복을 개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고작 5발만 발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라고 말이죠. 게다가 OKO 조기 경보 시스템 말고 다른 지상 레이더에서는 아무런 징후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상부에 보고를 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나중에 그가 옳았다는 것 증명되었습니다. OKO에서 잡혔던 5개의 미사일은 낮은 구름이 태양빛을 반사해 경보 시스템에 오동작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련의 한 장교의 침착한 대응 때문에 세상은 커다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내는 힘
<페이크와 팩트>는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페이크와 팩트를 구분해 내고 옳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주장과 사례들이 가득차 있는 책입니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상황이나 페트로프 중령이 처한 입장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판단과 대처를 할 수 있을까요? 위기 상황 속에서 사람은 극심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사고는 멈추고, 혼란스러워하며,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힘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성적 판단이 어렵게 되면 우리는 실수를 하게 되죠.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침착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하려는 힘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느린 판단 그리고 인정
인간의 뇌는 놀라운 장치입니다.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정교하게 연결되어 복잡한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자주 오류를 일으키는 불완전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사소한 실수부터 치명적인 판단 착오까지 반복하며 살아가죠.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과거와는 조금 다릅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올바로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손가락 끝 하나로 전 세계의 지식에 닿을 수 있는 시대지만, 그만큼 가짜뉴스, 조작된 광고, 과장된 건강 정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얽혀 소음을 만들어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언제 실수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세상에는 반쯤 진짜인 말과 완전히 거짓인 정보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단단한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판적 사고’입니다. 우리가 실수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비판적 사고’의 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가지는 겁니다. 지금 당장 결정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좀 더 확실한 데이터와 증거를 통해 최종 판단을 내리려는 ‘느린 판단’이 오히려 요즘같은 시대에 더 적절한 대응 전략이 아닐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이 내린 판단과 생각이 다른 증거와 사실들로 인해 오류로 밝혀진다면 용기있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늘 배워야 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실수할 수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생각과 사고의 유연성은 급변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자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상황이 결코 일어나지 않길 바래봅니다.
촌장 드림
